카카오엔터 피콕, AI 시대 불법 콘텐츠 11억건 삭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불법유통대응팀 피콕이 AI 확산으로 콘텐츠 불법 유통 방식이 변하는 가운데 추적과 삭제 기술도 강화하고 있다.
“어설프게 인공지능(AI)를 이용해 불법 유통을 해볼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불법유통대응팀 ‘피콕(P.CoK)’의 권영국 차장은 지난 10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AI 확산에 따른 불법 콘텐츠 유통의 변화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생성형 AI와 자동 번역 도구의 발전으로 웹사이트 개설과 불법 번역·유통의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반대로 불법 운영자를 추적하고 침해 콘텐츠를 찾아내는 기술도 함께 고도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카카오엔터는 2021년 11월 불법유통 대응 전담조직 피콕을 출범시켰다. 피콕은 국내외 불법 사이트를 모니터링하고, 검색 결과 및 침해 콘텐츠 삭제, 운영자 추적, 경고장 발송, 수사기관 공조, 저작권 인식 개선 캠페인 등을 맡는다. 카카오엔터가 피콕을 통해 삭제한 불법 콘텐츠는 현재까지 11억건에 이른다. 실제 사이트 폐쇄로 이어진 사례도 약 40건이다.
피콕은 카카오웹툰이 유료화에 성공하며 매출이 확대되던 2016년 무렵 불법 웹툰 사이트가 급증하자 대응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검색 결과 삭제를 중심으로 대응했지만, 불법 사이트 운영자를 직접 추적해 처벌로 이어지게 한 사례가 나오면서 전담 조직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거쳐 2021년 정식 조직으로 출범했다. 현재 권 차장과 박수혁·한예슬 대리가 피콕에 소속돼 있다.
◆불법 사이트의 ‘창과 방패’
피콕의 기본 업무는 모니터링이다. 국내외 온라인 공간에서 카카오엔터 작품이 어떤 형태로 유통되는지 확인하고, 침해 콘텐츠 삭제와 검색 결과 차단을 진행한다. 소규모 사이트 운영자에게는 경고장을 보내고, 반복적으로 침해하거나 대규모로 운영하는 경우에는 법적 대응과 수사기관 제보를 병행한다.
불법 사이트는 폐쇄돼도 새 도메인을 사들여 기존 데이터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운영자가 도메인 변경 사실을 텔레그램 등 비공개 채널을 통해 이용자에게 알리면 추적도 더욱 어려워진다.
한예슬 대리는 “사이트 개설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며 “새 사이트가 생겼을 때 최대한 빨리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작품명을 검색했을 때 불법 페이지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병행한다”고 밝혔다.
해외 서버와 프록시 서버도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불법 사이트들은 저작권 대응이 쉽지 않은 국가의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하거나, 여러 중계 서버를 거쳐 실제 서버 위치와 운영자를 감춘다. 광고 수익이나 후원금 역시 가상자산 또는 해외 거래소를 통해 오가는 경우가 있어 자금 흐름을 쫓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피콕은 운영자 추적과 신속 차단을 핵심 대응으로 꼽는다. 한국저작권보호원,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특별사법경찰, 해외 수사기관 및 현지 법률 대리인 등과 공조해 대형 불법 유통망을 겨냥한다. 특히 지난 5월부터 시행된 긴급차단 제도는 이전보다 차단 심의 속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권 차장은 “과거에는 심의 진행에 시간이 다소 소요되어 접속차단의 효과가 다소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긴급차단 제도 시행 후 불법 웹툰 사이트에 대한 접속차단의 효과가 체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콕이 적극 활용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는 공개정보출처조사(OSINT·Open Source Intelligence)다. 온라인에 공개된 도메인 등록 정보, 소셜미디어 활동, 서버·운영 패턴, 계정 흔적 등 여러 단서를 교차 분석해 불법 사이트 운영자의 실체와 연결고리를 찾는 수사 기법이다.
피콕은 OSINT를 활용해 불법 유통 운영자를 추적하는 방식을 축적해 왔다. 단순한 사례는 약 30분 안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만, 운영자가 다수의 서버와 우회 경로를 활용한 경우에는 한 달가량의 분석이 필요하기도 하다.
박수혁 대리는 “불법 유통 대응은 침해 콘텐츠를 지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운영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재유통을 반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피콕이 축적한 OSINT 활용 경험은 카카오엔터 내부에만 머물지 않고 업계로도 확산하고 있다. 카카오엔터를 비롯해 네이버웹툰,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플랫폼은 2020년부터 ‘웹툰 불법유통 대응협의체’를 구성해 정기적으로 관련 이슈와 대응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플랫폼별로 콘텐츠와 사업은 경쟁 관계이지만, 불법 유통 대응에서는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피콕은 올해 5월 협의체 간사 역할도 맡아 유관기관에 업계 의견을 전달하고, 주요 불법 사이트 대응과 수사 기법 활용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권 차장은 “침해 대응은 한 회사가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며 “OSINT처럼 실제 성과가 확인된 방법을 공유하면서 다른 플랫폼들도 운영자 추적과 국제 공조에 활용하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검색 결과 삭제 요청은 하루 처리량에 제한이 있지만, 구글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권리자로 인정받으면 더 많은 침해 URL에 대해 신속히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피콕은 이를 통해 대규모 검색 결과 삭제 대응을 진행해 왔다.
박 대리는 “국내에서는 모니터링 업체가 검색 결과 삭제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았지만, 카카오엔터는 권리자가 직접 대응하는 방식을 강화해 왔다”며 “피콕의 활용 사례를 본 뒤 업계에서도 TCRP 인증과 직접 대응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불법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해도 이용자가 새로운 주소를 찾기 어려워져야 합법 플랫폼으로의 이동 효과가 커진다는 것이 피콕의 판단이다. 실제 대형 불법 웹툰 사이트 ‘뉴토끼’가 지난 4월 말 접속이 어려워진 시기 웹툰 애플리케이션 신규 설치가 77% 증가했다는 업계 분석도 나온다.
피콕은 사후 삭제에 그치지 않고 내부 저작권 보호 시스템 ‘다크체이서(Dark Chaser)’도 개발했다. 외부 모니터링 솔루션을 사용하는 방식만으로는 카카오엔터의 작품 유통 구조와 대응 기준에 맞춰 기능을 세밀하게 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다.
다크체이서는 비가시적 워터마크 등을 활용해 유출 경로를 빠르게 확인하고, 침해 콘텐츠가 확산되지 않도록 사후 모니터링과 사전 유출 방지를 함께 수행하는 종합 시스템이다. 지난해 12월부터 베타 서비스로 운영했고, 올해 5월 정식 도입했다.
피콕은 불법 유통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수요를 줄이는 일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불법 사이트 이용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 부담을 느끼는 문화가 형성됐지만, 해외에서는 불법 번역본을 빠르게 소비하는 일이 ‘열성 팬덤’처럼 받아들여지는 사례도 있다. 합법 플랫폼은 정식 번역과 유통 절차로 인해 불법 번역본보다 늦게 작품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한 대리는 “피콕은 작가와 함께하는 저작권 보호 캠페인, 유저 대상 공식 굿즈 인증 캠페인 등 다양한 저작권 인식 개선 활동도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며 “특히 해외 독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불법 사이트를 제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권 차장은 “불법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특별히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당연한 기준이 돼야 한다”며 “불법 이용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을 넓히고, 이용자들이 합법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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